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보여라
“자신을 먼저 보여라” 라는 말이 있다. 문장을 조금 풀어보자면 “니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먼저 얘기함으로써 상대의 마음을 열게끔 하라” 정도일 것이다. 그런데 과연 이게 가능할까? 당사자도 아닌 제 3자가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것인가?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를 감추고 살아간다. 사람이 자기를 감추는 것, 바꿔 말하면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생각나는 것 몇 가지를 적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을 거다.
- 상대방(상대집단)과 내가 다르고, 그 이유로 상대방과의 거리가 생길까봐.
- 상대에게 호감을 보였지만 상대방으로부터 거절당할까봐. (심하게는 경멸당할 수도 있다.)
-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상대를 붙잡아 두려고.
그리고 자신을 숨기는 방법에도 여러가지가 있을 거다. 당장 떠오르는 몇 가지만 적자면,
- 상대방과 같게 행동하거나.
- 나를 실제 나 이상으로 잘난 것처럼 가진 것처럼 포장하거나.
- 혹은 호감을 숨기고 단지 멀어지지 않는 것에 만족하며 주위를 맴돌거나… 등
이렇게 사람들이 스스로를 숨기느라 급급해 관계의 진전이 없는 것을 보고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보여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섣불리 자신을 먼저 보였다가 상처가 생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누구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불확실한 미래에 자신을 맡겨라’ 라는 말과 다를 것이 없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보여라” 라는 말에 사람들은 왜 권위를 두는 걸까?
- 단순하게 상처의 위험속에서 얻은 것들에게 프리미엄을 주는 걸까?
- 위험하더라도, 또한 얻은 것이 그리 크지 않다해도, 그것을 성취해낸 사람이 많지 않다는 데서 오는 영웅에 대한 존경인가?
- 서로를 내보이는 사람들이 가득한 세상이 진정 아름다운 세상이기 때문인가?
- 아니면 단순히 상대방의 마음을 알고 싶어서인가?:-)
사람들은 용기를 가지고 도전한 일이 실패할 때 좌절감과 함께 자신감을 상실하는 것은 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보이는 일이 해야만 하는가?
인생을 흔히 도박에 비유하는데 ‘자신을 내보여라’ 라는 말은 곧 ‘너의 패를 보여라’ 라는 말과 같다. 패를 보여준 상황에서 갬블이 되겠는가? 도대체 무슨 수로 나 자신을 먼저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PS.
“상대에 대한 앎”이 과연 그렇게 가치 있는 것인가? 라는 결론으로 글을 써나가려 했지만 쉽지가 않네. 결론을 위한 근거가 좀 더 모이면 다시 한번 도전해봐야겠다.



